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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전도한 원리를 알라(고전2:1-5)
2021.04.09 17:03
곽장준
조회수 : 2752

사도 바울은 1장 10절부터 나오는 파벌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해결할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공통점은 교회 공동체는 도무지 사람의 주장이 나와서는 안 되고 그러만한 자격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바울은 이미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교훈을 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도 즉 십자가 복음 진리를 가지고 설명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받았고, 사람은 믿음으로 응답했을 뿐이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아무 것도 한 것도 없는데 파벌이 웬 말이냐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구원 받은 경위로 교훈 하나님이 은혜로 부르셨고, 놀랍게 선택해 주셨고, 일방적으로 구원을 베푸셨는데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이 파벌이 웬 말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바울이 전도를 한 원리를 가지고 교훈을 했습니다. 사람의 지혜도 아니었고, 능력도 아니었고, 스스로 믿은 것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파벌이 웬 말이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전도는 전도한 바울도 아무 것도 아니고, 듣고 믿은 성도들도 아무것도 아니며, 오직 성삼위 하나님의 공로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제대로 깨닫는다면 교회와 성도들은 성삼위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할 뿐이므로 파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1. 전도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는 것입니다. 1-2절

 

바울은 자신이 모든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말로 전도를 했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잘해서 이거나 말이 지혜로워서 사람들이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설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사실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실상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는 식의 신경질적 반응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바울도 복음을 사람의 귀에 이해를 시키고, 솔깃하게 들리도록 미사여구나 철학적인 기교를 섞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협 없이 복음 자체만을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전도했다는 말입니까? 1절에 오직 “하나님의 증거”만을 전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머리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2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그 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우리 죄값을 속량해 주셨다는 사실만 전했을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고 마음이 열리며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고, 십자가 복음이 자신들의 죄를 사해주시므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믿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1:18에서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도가 깨달아지는 자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자들은 바로 그 효력을 체험하게 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는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얻는 능력(뒤나미스-권능)이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받아들인 자들은 죄가 해결되고 저주가 풀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일뿐입니다.

 

2. 전도방법은 성령이 주신 능력이었다는 것입니다. 3-4절

 

바울은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할 당시 오히려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약하다는 “아스테네이아”인데 병약하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날 때, 강한 빛에 쓰러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는데 그 때 눈과 몸에 치명타를 입은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 두렵다는 “포보스”인데 강한 자의 공격에 공포를 느낀다는 말로 이미 빌립보에서 매 맞고 감옥에 들어갔고, 데살로니가에서는 깡패들을 동원하여 소동을 일으키고 색출하여 잡으려고 하자 간신히 도망할 수밖에 없는 박해를 당했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를 내려갔을 때 마음에 공포감이 사라자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심히 떨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트레모스”인데 사람 앞에서 보여 질 정도로 바들바들 떨면서 사역을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한계는 이미 와 있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을 하거나 전도를 할 때 설득력 있고 지혜롭게 여유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에서의 전도사역은 죽을 쑤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정 반대였습니다. 어떤 곳보다도 전도의 성과가 컸던 것입니다. 유스도라는 사람이 회당 옆에 자기 집을 교회로 삼았으며 날마다 복음을 강론하자 회당장 그리스보와 온 가족도 믿었고, 수많은 사람이 믿었습니다.(행18:8) 그것은 바로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도할 때 능력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능력은 “뒤나미스”인데 행1:8에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말씀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그 권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대로 바울이 성령의 말씀에 붙잡혀 강력하게 전했습니다.(행18:5) 또 주께서 어느 날 밤중에 나타나셔서 이 성에 내 백성이 많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해 주겠다고 하시므로 1년 6개월 동안이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행18:9-10) 교회는 오직 성령이 주체가 되실 뿐입니다.

 

3. 전도열매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5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은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의외로 성도들의 믿음이 자아의 믿음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자아가 이해하는 것만 믿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믿고자 하는 믿음입니다. 자기 이성으로 믿기 때문에 계속 의심이 들어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적인 지식으로의 이해가 아니라 영적인 깨달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을 때는 깨달아지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를 한 결과 들은 사람이 복음을 믿을 때 이것이 열매입니다. 참 믿음은 지식적인 이해가 아니라 성령에 의한 영적인 깨달음입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믿음을 갖게 하시는 인침을 받으면 마음에 의심 없는 확신이 항상 그 마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롬8:16에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했고, 살전1:5에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했습니다. 전도의 내용도, 방법도, 열매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믿음 주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의 역할은 전혀 없었습니다. 사람이 나서서 파벌을 일으키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