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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 음행을 엄단하라(고전5:1-13)
2021.06.04 15:33
곽장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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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성령강림주일이었기 때문에 12장으로 넘어가서 성령을 주신 목적을 깨달아야 성령의 역사나 은사를 오용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상고했습니다. 오늘은 고린도 교회의 분파와 파벌의 문제 다음으로 두 번째 문제인 음행에 대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음행의 문제는 상식을 넘어섰고, 고린도의 일반인들도 행하지 않는 큰 범죄를 노골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듯이 행하고 있는 폐단을 보고 바울은 강력하게 엄단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계모를 취해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아니하고 놔두므로, 바울은 그 자체가 큰 잘못임을 지적하고, 또 그를 징계하는 것이 옳으며, 또 그에게도 자신이 회개할 기회를 얻어 구원이 회복될 수가 있고, 또 악영향이 교회 전체에 퍼질 우려가 있었기에 빨리 엄단하는 정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음행(淫行음란할음,갈행)폴네이아인데 포르노스즉 매춘, 부정한 성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어 간음, 간통, 축첩, 깨끗지 못한 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의 순기능을 위해 질서를 주셨습니다. 부부가 자녀생산과 사랑의 관계를 위해 허락된 성 외에 다른 성은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성 간에는 성적인 매력에 빠져 사랑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질서를 넘어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아버지의 아내였던 사람을 자식이 아내로 맞아 산다는 것은 인륜에도 벗어나는 큰 범죄였던 것입니다. 35:22에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후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동체는 경건과 거룩한 삶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 음행을 징계하라고 했습니다. 1-3

 

이런 일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는 것을 세 가지로 지적했습니다. 이는 큰 범죄이므로 통한히 여겨도 부족한 일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통한(痛恨아플통,한할한)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애통(哀慟슬플애,서럽게울통)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통회 자복해야 용서를 받고 다음에는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회자복이 없으면 영적으로 타락한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한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교만은 퓌시오오라고 하는데 이는 퓌사라는 풀무에서 유래되어 부풀어 오르게 하다는 뜻으로 자신을 우쭐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스스로 부끄러워해도 부족한데 오히려 우쭐댄다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대단히 타락해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또 그 일 행한 자를 공동체에서 쫓아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가 징계법이 작동하지 않고 무질서한 것은 세속적인 다른 힘에 의해 영적 권세가 맥을 못 추므로 공동체가 타락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무나 안타까워하며 3절에 이렇게 책망했는데 공동번역으로 보면나는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으로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이 그런 짓을 한 자를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미 단죄하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계명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약시대부터 시행되어 온 법입니다. 제사법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해결되었기에 폐해졌지만, 10계명은 그대로 준수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 중에 7번째 계명을 범했을 때에는 구약시대에는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공동체에서 내쫓는 것으로 처벌을 대신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상벌제도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교회만이 아니라 천상에서도 똑같이 시행되는 법입니다. 영생과 영벌이 있기 때문입니다.

 

2. 회개의 기회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4-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 주었다는 말은 먼저 주 예수의 이름으로 고린도 성도들과 바울이 함께 결정하여 교회에서 내쫓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일단 교회법으로 징계를 하여 공동체 밖으로 내쳐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더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죄값을 치르는 가운데 자신의 죄를 깨닫고 스스로 통회자복 한다면 이 땅에 있는 교회에서는 비록 내쳐졌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한 강도는 예수님을 비난했으나 또 다른 강도는 그를 책망하며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빌자 예수님이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3:39-43) 이처럼 하나님은 죽어서 음부로 가기 직전에 회개만 해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형수들 가운데서도 간혹 저지른 범죄가 커서 사형언도를 받았을지라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고 믿은 후에 사형을 당하면 그 영혼은 낙원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 자신의 영혼을 어떻게 주께 귀의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3. 공동체의 거룩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6-13

 

그러므로 이 땅에 살면서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잘난 체 하면서 살다가 죽는 자들이 있다면 그 자신은 하나님 앞에 심판을 당하겠지만, 그러나 이 땅에 있는 영적 교회 공동체는 큰 후유증을 겪을 것입니다. 교회의 부패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누룩의 속성을 죄의 속성으로 비유합니다. 누룩은 빠르게 밀가루를 부풀리는 속성이 있듯이 죄도 빠르게 전염시켜 교회를 부패하게 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월절 희생으로 인해 죄 없는 공동체가 되었는데, 이런 자들 때문에 죄의 온상으로 부패해 버릴 우려가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죄를 빨리 끊도록 순전함과 진실함의 말씀의 떡인 계명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 밖까지 적용시킨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으레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까지 다 따지려다가는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함께 영적인 형제가 된 성도에 대해서는 음행과 탐욕과 우상숭배와 모욕과 술 취함과 속여 빼앗음에 대한 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반드시 회개하고 돌이키기까지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아야 그들을 구원할 수가 있지 않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러내놓고 당당하게 나오는 자들은 내쫓아버려야 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 공동체의 거룩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방치하거나 용인하면 교회의 거룩이 소멸될 것이고 그러면 교회 공동체 전체가 함께 타락하여 멸망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벧전1:13-16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