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성도가 감수해야 할 일(행21:17-36)
 
곽장준 조회:39 / 작성일:2020-01-11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이미 예상했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형제들이 예루살렘 행을 만류했던 그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당연한 영적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을 하려면 감수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를 동시에 공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사명 자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가장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환영만 받으며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자로서 애환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고로 가치 있는 일은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없고, 귀한 일일수록 고난이 많은 법입니다. 과연 바울의 애환은 무엇인지 알고, 우리들도 이 사명을 감당하가기 위해 생기는 어려움을 이겨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성숙한 성도가 감수해야 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1. 무지로 인한 오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7-21
 
사도 바울이 3차에 걸친 오랜 선교 여행을 다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본부에서 선교보고를 했습니다. 그 때 야고보와 장로들은 모두 바울을 환영하며 영접했습니다. 이처럼 지도자들은 바울의 수고를 제대로 알고 예우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대인이면서 기독교로 개종한 수만명의 신자들 중에는 바울이 가르치는 복음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모세를 배반하고 할례를 하지 말고 율법도 지키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21) 이는 그들의 무지로 인한 오해였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법이기는 하지만 복음을 위한 그림자의 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율법 중에는 윤리적인 법은 그대로 준수하되 제사법 즉 죄사함을 받는 법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으므로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주의적 의식에 꽉 차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바울을 아주 잘못 가르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것은 바울이 아니라 유대인 크리스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복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아직 이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아직 세상 사람들에게나 혹은 이제 갓 믿어서 잘 알지 못하는 신자들에 의해 오해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지식과 사고방식의 잣대를 가지고 기독교와 크리스찬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기 이전에 행하던 관습에 대해 너그럽게 넘어가려는 육적 욕구가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제사를 드릴 때 절하지 않는다고 조상도 몰라보는 쌍놈이라고 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오해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 믿기 전에 먼저 믿은 자들을 그렇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모르면 오해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2:29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하셨습니다.
 

2. 덕을 위해 허리굽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2-26
 
야고보와 지도자들은 바울을 위해 권고를 하기를 그들의 비방을 피하기 위해 바울도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네 사람이 결례의식을 행해야 하는데 바울이 그 비용을 대고 함께 결례의식을 행하면 그들의 오해가 풀리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지도자들의 권면대로 그대로 순종해서 많은 비용을 부담하여 결례의식을 행했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볼 때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그들의 오해를 풀어주고자 굽히고 들어가는 것 같은 감을 주면서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덕을 세우기 위해 참고 그렇게 굽힌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만은 못 참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자존심이 강한 것은 자신이 오히려 허약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이 있으면 남이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랑의 섬김과 감동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덕으로 행하므로 그들의 마음이 열려야 복음이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어떤 굴욕적인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부자는 남들이 자신을 가난하다고 말해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캐딜락 승용차를 가장 많이 구입하는 부류는 흑인이라고, 자신 있는 사람은 성급하게 화를 내거나 과시욕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차원에서 그들을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유익을 위해 바울이 손해를 감수하는 봉사적인 차원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남을 위해 자신을 손해 보며 굽히는 덕을 끼치는 삶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고전10:23;15:2)
 

3. 악한자에게 당하는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7-36
 
바울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추며 덕을 세웠으나 이번에는 보수꼴통인 해외 교포 유대인들로 인해 바울은 그 동안 해외에서 겪은 것 이상으로 그들은 무섭게 바울을 죽이려고 몰아쳤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바울을 붙잡았습니다.(27) 악한 사람들은 꼭 보면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충동질을 하여 같이 죄를 짓게 만듭니다. 이것은 사탄의 본성인데 악한 사람들은 사탄 짓을 합니다. 또 그들은 바울을 거짓말로 큰 죄를 지은 사람으로 뒤집어 씌웠습니다. 성전은 이방인이 들어가지 못하는데 바울이 이방인들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들으면 당장 흥분하여 쳐 죽일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악한 자들은 거짓말도 곧 잘 합니다.(28) 그들은 만일 천부장이 와서 바울을 격리하지 않았다면 바울을 돌로 쳐 죽였을 것입니다.(32) 그들은 천부장에 의해 결박되어 가는 바울의 뒤를 따라가며 그를 죽이자고 외쳐댔습니다.(36) 바울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이처럼 금방 무서운 범법자가 되어 죽음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자의 당하는 의로운 고난입니다. 악한 사탄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려고 역으로 강하게 박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참아내야 합니다. 박해는 우리가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고 역으로 우리가 그만큼 진리의 편에 가깝게 서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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