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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받은 구원의 내막을 알라(고전1:26-31)
2021.03.26 09:13
곽장준
조회수 : 28

우리는 오늘 본문을 정확하게 깨닫기 위해서 앞의 상황을 조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바울은 1:10절부터 고린도 전서의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 문제제기를 파벌로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이 문제는 무엇보다도 고린도 교회를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1차 교훈으로 우리의 구원은 철저히 십자가의 진리로 받은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1.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얻는 것(18절), 2.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19-21절), 3. 찾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는 것(22-25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가 받은 구원의 내막(內幕안내,막막,속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구원은 철저히 예수님 때문에 받았지, 우리 힘으로 구원받고, 교회를 세우 것도 아닌데, 더구나 몇몇 지도자를 중심으로 파벌을 만들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의 내막을 정말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과 예수님 중심의 교회와 신앙생활을 해 나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기인하고 잇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은혜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6
 
바울은 먼저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말씀인 24절에서도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부르심이란 “클레시스”인데 “하나님의 calling, 초청, 소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임의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기에 우리가 응답하고 구원을 받을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 부르심을 받아 구원을 받을 상황은 더구나 아닌 것이, 그들은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세상에는 지성이 뛰어난 사람도 있었고, 능력이 탁월한 자들도 있었고, 문벌이 뛰어난 자들도 있었으나 신자들은 거의 그런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셔서 구원을 주시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수록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파벌을 조성하여 힘겨루기를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갈5:13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했습니다.
 
2. 하나님의 택하심 앞에 자아를 내려놔야 한다는 것입니다. 27-28
 
바울은 또 하나 구원은 하나님의 택하심에 의해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택하심은 “에클레고”인데 에크(..로부터)와 레고(명령하다)의 합성어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정하시고 명령을 하시므로 선택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고르고 뽑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더구나 하나님은 세상에서 미련한 우리를 택하셨고, 세상에서 약한 우리를 택하셨고, 또 천하고, 멸시 받고, 없는 우리를 택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영생과 영광을 누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개 무량한 일입니까? 그런데 거기에 더 깊은 의도가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형편없는 우리를 택하여 구원하시므로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 강한 사람, 귀한 사람, 존대 받는 사람,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부끄럽다는 “카타이스퀴노”로 카타(..로 하여금)와 이스퀴노(창피하고 수치스럽다)의 합성어입니다. 또 폐하다는 “카탈게오”로 카타(..부터)와 알게오(비활동)의 합성어로 쓸모가 없어 폐기하다는 뜻입니다. 즉 세상에서 형편없는 사람들도 구원받고 천국에 영생과 영광을 누리는데 세상에서 내노라고 교만 떨던 사람들은 지옥불에 들어가 멸망당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후회가 막심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진작 겸손하게 잘 믿을껄!” 하니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형편없던 우리가 이처럼 과분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세상의 내노라는 그들보다도 훨씬 더 겸손하게 바싹 엎드려도 모자랄 판에 어찌 파벌을 일삼으며 세상에서는 빌빌거리다가 교회만 오면 어깨에 힘을 주고 좌지우지 하려하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아마저 다 내려놓고 “저는 죽은 개와 같은 자(삼하9:8)일뿐입니다.” 하며 겸손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신7:7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버렸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므로 벧후1:10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초심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구원하심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29-31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 안에서 거듭나게 하시고, 신령한 지혜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과 구원까지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과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은 자기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9절에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신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아무개 파에 속해있다고 목에 힘주고 다녔다는 거 아입니까! 물에 빠져 죽어가기에 건져줬더니 “내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 아닙니까! 그러므로 정신 차리고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31절에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이 말은 렘9:23-24을 인용한 말씀인데 당시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떨었는지, 의로운 백성은 죽여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악한 자들은 영적 간음과 배신을 밥 먹듯 하고, 거짓과 악행과 사기를 치며, 율법은 버리고 바알을 섬겼으니,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한 것이니, 뒤늦게 하나님이야말로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하나님인 것을 진정으로 깨달을 때가 올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루 빨리 정신 차리고 우리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깨닫고 긍휼의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께 경배와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